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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없는 수박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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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단상 -

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여름이 되려면 이른 시기, 시골마을에 때 아닌 경로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수박잔치라는 말에 삼삼오오 짝 지은 노인네들이 장사진을 이룹니다. 지금도 철없이 비싼 게 수박인데 먹을 게 귀했던 그 시절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온 고을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에~ 다들 잘 오셨습니다. 오늘 수박 마음껏 드시고 잘 놀다 가이소. 그라고 한 가지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수박씨는 따로 모아 주이소” 잔치를 준비한 청년 이일환의 인사말이 끝나자 여기저기 수박 터지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퍽! 쩌~억, 참으로 잘 지은 농사입니다. 막걸리도 몇 순배 돌았습니다. 잔치에 술 빠지면 속없는 찐빵입니다.

해가 뉘엿해지고, 몇 번의 소변에 부른 배가 꺼질 때쯤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저기 남은 수박의 잔해를 치우며 이일환은 연신 흐뭇해합니다. 잔치는 대성황이었고 사람들의 덕담도 좋았습니다. 장내정리를 마친 청년 이일환, 수박씨 통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수박씨 통이 텅 비었습니다. 통안 가득해야 할 수박씨가 달랑 몇 개만 남은 것입니다.

오늘의 수박잔치는 채종을 위한 것입니다. 종묘사와 수박씨 채종 계약을 맺은 이일환, 씨만 받고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심정으로 노인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이빨 엉성한 노인네들이 한해 농사를 먹어버린 것입니다.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수박씨만 보면 즐겁다는 청년 이일환, 올 봄에도 수박씨를 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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