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주는 먹이에 점점 길들여지는 빈자
3
중국 책 읽기 (매일 신문) -
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가난한 자의 육체는 부자의 침상에
샤야 저(2005, 백화주문예출판사)
서문이 없는 책이다. 서문 대신 내용 요약만을 간단하게 적었다. 표지 디자인도 예사롭지 않다. 섹시한 자태의 젊은 여성을 모델로 삼았는데 그 표정이 아주 애매하다. 슬픔인지 체념인지 아니면 조소인지 분간할 수 없다.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표제어를 보면 '현대판 첩(二◆)의 생존상태실록'이라고 적혀있다. 소설의 형식을 빈 실화임을 암시한다. 저자의 이름 샤야(傻◆)도 본명이 아니고 필명이다. 중국말로 샤야는 어리석은 사람, 바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책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이 책은 가난한 자와 부자에 관한 책들의 일부이다. 10%의 부자는 이 책을 읽을 시간이 없고, 10%의 가난한 자는 이 책을 살 돈이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나머지 80%의 월급쟁이들일 것이다" 마치 관음증 환자처럼 중국사회의 양극에 속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몰래 들추어 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야기는 농민공 부부의 도시 이주에서 시작한다. 토지를 잃어버린 수바오렌 부부는 도시로 이주한 후 신발을 닦거나 수레를 끌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연명해간다. 첩첩산중이 인생길이라 아무리 노력해도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생활이 계속된다. 그러던 와중에 수바오렌은 우연한 기회에 만생원이라는 대형슈퍼마켓의 주인 꺼쟌쉐이를 만나고 그 상점의 점원으로 취업하게 된다. 취업 후 생활이 안정된 수바오렌은 지난 시절 겪었던 생존불안이 생각날수록 상점에 대한 의존과 믿음이 커진다. 먹이를 주는 대상에게 마음을 열고 길들여지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시간이 갈수록 수바오렌은 점원의 직위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고 어느 순간 부자 주인 꺼잔쉐이의 정부가 되고 만다. 그리고 수바오렌은 상상할 수없는 애정과 음모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면서 두 사람의 배우자들까지 가세한 사랑 놀음에 빠진다.
얼핏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러브스토리처럼 보이지만 책은 첩첩으로 의미를 찾는 재미가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분명 불륜, 외도, 애정행각, 부정과 같은 이미지로 규정될 수 있는 잘못된 사랑이야기지만 저자는 범시론(凡是論)을 택하면서 이들의 행위를 합리화시킨다. 주인공의 두 가정이 파탄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견고하게 닫혔던 인성의 벽이 허물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풀어낸다. 결국 이야기는 부유한 생활을 갈망하는 가난한 자와 안정을 주는 부자 사이의 공존을 두둔하면서 마무리되지만 저자는 행간에 또 다른 재미거리를 남겼다. 중국의 처참한 현실을 빗댄 또 다른 역설을 숨겨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