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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머리 총각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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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단상 -

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학원을 팔려는데 임자가 나서질 않는데요?” “권리금을 내리세요.” “아이 전학은 언제가 좋을까요?” “12월 지나고 학기 끝나야 합니다.” 흔한 일상 이야기와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 선문답처럼 이어집니다. 풍상에 일그러진 한옥의 두 평 남짓한 방안, 향 연기 가득한 속에 두 사람의 인영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군데군데 촛불장삼을 화려하게 걸친 불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구석에 세워둔 대나무는 바람이 없는데도 잎이 흔들리는 듯합니다.

방 한가운데 놓인 묵직한 탁자에 젊은이가 좌정해 있습니다. 찢어진 청바지에 빨강 셔츠, 노랗게 염색한 길고 굽슬굽슬한 머리를 옆으로 쓸어 넘긴 채 연신 뭔가를 긁적이고 있습니다. 그 앞에는 제법 세련된 여인네가 다소곳이 앉았습니다. 끊임없이 뭔가를 이야기하는 여인네….

노랑머리 젊은이는 부적을 잘 쓰는 총각도사입니다. 남편이 너무 늦게 들어와 속상한다는 아낙네를 위해 부적을 처방합니다. 부적을 베개 속에 넣은 다음날 남편은 9시가 되기 전에 귀가를 합니다. 그 다음날은 7시, 또 그다음 날은 출근하지 않겠다고 버팁니다.

소문이 꼬리를 물고 여인네를 이끌었습니다. 가끔씩 단정적인 대답을 던지며 그리기에 열중하던 도사, 한순간 긴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붓을 놓습니다. “이것을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서 태우고, 태운 가루를 정화수에 타서 마셔요”

3만원을 넣고 나오면서 친구가 묻습니다. “너 정말 부적 태우고 물 마시려고 하니?” “마시긴 뭘 마셔, 그냥 재미지.” 3만원은 여인네의 넋두리 값입니다. 그녀는 이야기 들어 줄 사람을 찾아 도사에게 왔습니다. 남의 말 함부로 하기 좋아하는 세상, 여인네는 소리 새지 않을 신세타령 한바탕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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