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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불이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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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단상 -

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놈, 까불이 한 마리 칠푼이다” 대갈일성(大喝一聲)이 터졌습니다. 여간한 자극에는 미동조차 하지 않을 듯 보이는 선풍도골의 노인, 가슴까지 내려온 허연 수염이 봉두난발이 되었습니다.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도 올올이 흩어져 제 각각입니다. 쑥대밭이 된 방안은 더 가관입니다. 마치 밀가루 포대가 터진 듯, 온 방안이 새하얗습니다. 군데군데 보석처럼 반짝이는 불씨는 들기름 칠한 종이장판을 점박이로 만듭니다. 다급해진 노인, 젖은 걸레를 들고 진화작업에 나섰습니다.

화롯불에 넣었던 알밤이 터진 것입니다. 노인을 위해 알밤을 구우려던 손자는 칼집 내는 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평소 천방지축이던 철부지는 순간 범 만난 하룻강아지가 됩니다.

가끔씩 혈액순환에 방해된다고 손자의 새 양말 발목을 자르고, 셔츠의 목을 잡아 늘어뜨리는 노인, 새벽녘이면 손자를 깨워 샘에 갑니다. 세면은 꼭 찬물로 하는데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손에 물을 적신 후 양손을 비벼 두 눈에 대고 지그시 누르면서 문지릅니다. 몇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목덜미를 씻습니다.

“눈이 맑아야 정신이 맑다.” “제비 똥을 가제에 싸서 흐르는 물에 두면 벌레들의 눈알만 남는데 그것을 먹으면 눈이 밝아진다.” 비방과 비법까지 전수합니다.

아흔이 넘어서도 바늘에 실을 꿰던 노인은 잠자듯 떠났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안경잡이 손자는 제비 똥을 찾습니다. 어렴풋이 ‘까불이’와 ‘칠푼’의 의미를 느낍니다. 삼사일언(三思一言)`삼사일행(三思一行), 손자의 무게가 백오십 근이 넘는 것은 비계 때문이 아니라 손자 속에 노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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